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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끼엠의 물결과 구시가지의 골목을 걷다: 탕롱 수상인형극 관람과 함께 누리는 하노이 반나절 도보 기행

by jasonkang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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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끼엠 호수 앞 건물 2층에서 내다 본 호안 끼엠 호수의 저녁노을 장면

 

여행지에서 가장 온전하게 그 도시의 숨결을 느끼는 방법은 두 발로 직접 땅을 딛고 걷는 일입니다. 오토바이의 경적과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뒤엉킨 베트남 하노이의 심장부, 호안끼엠(Hoàn Kiếm) 호수 일대는 도보 여행자에게 끊임없는 감각의 향연을 선물하는 곳입니다.

탕롱 수상인형극장(Thăng Long Water Puppet Theatre)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방문한 극장이 호안끼엠 호수 북동쪽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구시가지(Old Quarter)와 호수 주변의 주요 명소들이 도보 5분에서 15분 안팎에 모두 모여 있어, 공연 관람을 중심에 두고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걸어서 하노이를 깊이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1. 오후의 출발: 붉은 테훅교를 건너 응옥선 사당으로 (도보 2분)

공연 시간이 4시 10분이었는데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어서 제법 여유가 있어 극장에서 걸어서 불과 2분 거리에 있는 호수 안의 작은 섬, 응옥선 사당(Đền Ngọc Sơn)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마주한 붉은색 목조 다리 ‘테훅교(Cầu Thê Húc)’는 잔잔한 에메랄드빛 수면 위에 선명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을 머금는 다리라는 뜻에 걸맞게,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마치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사당 내부로 들어서자 하노이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전설의 실체인 거대 거북 박제 두 마리가 유리관 안에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레 러이(Lê Lợi) 왕이 호수의 거북에게 신검을 받아 명나라를 물리치고 다시 검을 돌려주었다는 ‘환검(還劍, 베트남어 발음으로는 호안 끼엠) 전설’이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다가왔습니다. 잠시 후 보게 될 수상인형극에서도 이 전설이 다뤄진다고 하니, 미리 이곳을 들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2. 달콤한 쉼표: 좁은 골목 속 '카페 장'의 원조 에그커피 (도보 5분)

사당을 둘러보고 나와 북쪽 구시가지 골목을 향해 5분 남짓 걸었습니다. 하노이 골목길 특유의 낡고 정겨운 벽면 사이로 1946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에그커피의 원조집, ‘카페 장(Café Giảng)’의 소박한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법한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 계단을 오르니,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2층 공간에 낮은 나무 테이블과 작은 의자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습니다. 1946년 프랑스 식민 시절 우유가 턱없이 부족하자 달걀노른자를 정성껏 휘핑해 크림 대용으로 얹어 내놓은 것이 에그커피(Cà phê trứng)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물이 담긴 볼 위에 받쳐 나온 에그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달걀 비린내는 전혀 없이 묵직하고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의 풍미가 먼저 입안을 감싸고, 그 뒤로 쌉싸름하고 진한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의 바디감이 스며들었습니다. 달콤 쌉싸름한 온기가 걸어 다니느라 살짝 피로해진 다리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3. 물 위의 신화: 탕롱 수상인형극 관람 (약 50분 소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뒤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탕롱 수상인형극장에 입장하여 약 5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을 관람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4. 저녁의 미식: 숯불 향 가득한 '분짜 닥낌'과 성당 길목의 '퍼 텐' (도보 7~10분)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자 밖은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걸어서 채워진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구시가지의 맛집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구시가지 항만(Hàng Mành) 거리로 7~8분을 걸어가면 하노이 대표 분짜 노포인 ‘분짜 닥낌(Bún Chả Đắc Kim)’이 나옵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숯불에 구워지는 돼지고기의 고소한 연기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온 한 상차림은 푸짐함 그 자체였습니다.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낸 도톰한 고기 완자와 삼겹살이 새콤달콤하고 따뜻한 느억맘(피시소스) 국물에 듬뿍 담겨 나왔고, 갓 삶은 하얀 쌀국수 면(분)과 바구니 가득 담긴 허브 채소들이 곁들여졌습니다. 국수에 고기와 채소를 얹어 소스에 적셔 먹으니 숯불 향과 새콤달콤한 감칠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바삭하게 튀겨진 게살 춘권인 넴란(Nem rán)을 한 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꽉 찬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분짜'라는 음식은 하노이 지방의 전통적인 음식이어서 남쪽 지방에서는 이를 '분짜 하노이'라 통칭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만약 맑고 깊은 국물이 당긴다면 성요셉 성당 방향으로 걸어가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퍼 텐(Phở 10 Lý Quốc Sư)’을 찾는 것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소뼈를 오랜 시간 진하게 우려낸 맑고 깊은 육수에 부드러운 소고기가 듬뿍 올라간 쌀국수는 하노이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덜 익혀 부드러운 안심(Tai)이나 푹 삶아 쫄깃한 양지(Chin)를 취향대로 골라, 갓 튀긴 꽈배기 빵 ‘꾸아이(Quẩy)’를 뜨끈한 국물에 푹 적셔 먹는 로컬 방식은 도보 여행자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 줍니다. 분보남보(Bún Bò Nam Bộ) 도 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비빔국수인데 양념장이 아니라 느억맘을 베이스로 하여 만든 국물 위에, 국수와 풍성한 채소 및 양념하여 익히 다진 고기를 얹어주면 휘저어가면 먹는 음식입니다. 

5. 밤의 정취: 하노이 성요셉 성당과 구시가지 36거리의 노천 풍경

식사를 마친 뒤 호수 서편에 우뚝 솟은 하노이 성요셉 성당(Nhà Thờ Lớn Hà Nội)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1886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본떠지었다는 네오고딕 양식의 석조 성당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거뭇거뭇한 외벽 덕분에 밤이 되면 한층 더 장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성당 앞 광장은 하노이 특유의 젊고 활기찬 노천 카페 문화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가에 빽빽하게 놓인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걸터앉아, 시원한 레몬아이스티(짜짜인, Trà chanh)를 마시며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현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채웠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길거리 바닥에 편하게 앉아 도시의 밤을 즐기는 이들의 자유로움이 도보 여행자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당을 뒤로하고 극장 뒤편 구시가지 36거리(Phố cổ Hà Nội)로 다시 접어들었습니다. 은세공 장인들이 모여 있던 항박, 가죽과 신발 가게가 늘어선 항저우 등 골목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직업의 역사가 간판과 풍경 속에 묻어납니다. 특히 주말 저녁이면 동킨응이아툭 광장에서 동쑤언 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야시장이 열려 수많은 인파와 길거리 간식들이 활기를 더합니다. 좁은 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굽이굽이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이 번졌습니다.

6. 달콤한 마무리: 켐 짱띠엔과 호안끼엠 호수 야경 산책

도보 여행의 대미는 다시 호안끼엠 호수로 돌아와 장식했습니다. 호수 남동쪽 짱띠엔 거리로 걸어가 1958년에 문을 연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 ‘켐 짱띠엔(Kem Tràng Tiền)’을 찾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들과 산책 나온 시민들로 붐비는 가게에서 초록빛 찹쌀떡 맛 아이스크림인 ‘콤(Cốm)’을 하나 샀습니다. 입안에서 쫀득하게 씹히는 찹쌀 알갱이와 은은하고 고소한 단맛이 저녁 산책의 완벽한 길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약 1.7km에 달하는 호수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30분에서 40분 정도면 넉넉히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평탄한 수변 산책로입니다. 저녁 7시가 넘어가자 호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거북탑(Tháp Rùa)에 은은한 노란 조명이 밝혀지고, 낮에 건넜던 테훅교 역시 붉은빛으로 물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호숫가 벤치에 가만히 앉아 호수 위로 불어오는 선선한 밤바람을 맞았습니다. 낮의 무더위와 번잡함은 온데간데없고, 잔잔한 수면에 비친 불빛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참으로 호젓했습니다. 주말이었기에 호수 주변 도로는 차 없는 보행자 전용 거리로 바뀌어 있었고, 곳곳에서 거리 버스킹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이들이 전통 줄넘기를 뛰며 웃고 있었습니다.

빠른 교통수단에 몸을 실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좁은 골목의 냄새, 오래된 건물의 질감, 그리고 현지인들의 소박한 미소까지. 탕롱 수상인형극을 나침반 삼아 걸었던 호안끼엠의 반나절은, 하노이라는 도시가 지닌 깊고 다정한 온도를 두 발로 고스란히 체감한 잊지 못할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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