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지난 20여 년간의 베트남 체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를 사로잡았던 베트남의 다양한 모습들 - 오토바이 문화부터 길거리 음식, 따뜻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마주했던 문화적 차이까지 - 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베트남에 발을 처음 디뎠던 2004년 2월, 낯선 공기가 온몸을 감쌌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 자전거로 가득 채워졌던 도로가 주는 신비로움, 활기 넘치는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묘한 설렘이 가슴 한 켠을 간질였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었죠. 특히 저는 베트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기에, 처음부터 베트남의 좋은 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목차
I. 오토바이 물결: 혼돈 속에서 발견한 질서와 문화
II. 길거리 음식: 소박함 속에 담긴 행복과 맛
III. 따뜻한 사람들: 낯선 곳에서 느낀 편안함과 인심
IV. 아름다운 자연: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풍경들
V. 문화적 차이: 어려움 속에서 얻은 성장과 이해
VI. 또 다른 고향, 베트남: 삶의 일부가 된 사랑
I. 오토바이 물결: 혼돈 속에서 발견한 질서와 문화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오토바이입니다.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7년경이었고 2008년에는 모든 라이더들이 헬멧을 쓰고 달리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은 처음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혼잡함 속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경적을 울리며 양보하고, 자동차의 지시등을 대신하는 수신호, 좁은 골목길을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흐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에너지는 왠지 모르게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처음 오토바이를 탔을 때,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자외선의 따가움을 몸 전체로 느끼며 가야 했습니다. 비로소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 패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토시를 주로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두꺼운 후드티로 머리로부터 팔과 몸을 가리고 얼굴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달리면서 몸으로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덥다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II. 길거리 음식: 소박함 속에 담긴 행복과 맛
베트남은 우리와 비슷한 레시피를 갖고 조리하는 각종 요리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저녁나절 BBQ로 즐기는 돼지고기구이는 저녁 시간이면 사방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겨댑니다. 이런 맛있는 냄새는 저를 끊임없이 유혹했습니다. 그저 가서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돼지고기 요리라고 해도 지역별로 다릅니다. 북쪽은 국수와 채소를 느억맘 소스와 함께 먹는 분짜(Bún Chả)가 있다면 주로 중부지역에서 먹는 넴 느엉(Nem Nướng)은 보통 라이스페이퍼(반짱)에 꼬치나 완자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싸서 돌돌 말아 먹는 돼지고기 요리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찌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돼지고기 BBQ는 주로 껌땀 스언 느엉(Cơm Tấm Sườn Nướng)으로 언뜻 보면 한국식 양념돼지갈비 느낌입니다. 주로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바로 그 음식이죠. 뜨겁게 끓고 있는 쌀국수 국물,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 달콤한 열대 과일 향기...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은 여행자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현지인들과 함께 먹는 쌀국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서툰 베트남어로 "퍼 보, 못 밧" (소고기 쌀국수, 한 그릇 주세요)이라고 주문했을 때, 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쌀국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따뜻한 마음을 담은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III. 따뜻한 사람들: 낯선 곳에서 느낀 편안함과 인심
베트남 사람들의 친절함과 미소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길을 헤맬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 서툰 베트남어에 귀 기울여 대화하려는 노력(때로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일을 당해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방마다 발음들이 많이 달라서 발음의 문제에 매우 힘들어합니다), 작은 친절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 그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낯선 곳에서도 금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과일을 사는데, 가격을 깎아주며 덤으로 몇 개 더 얹어주셨던 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심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이런 점은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IV. 아름다운 자연: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풍경들
베트남의 자연은 도시의 번잡함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베트남의 자연환경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남부 해안 지역은 화강암 고생대 구조여서 우리의 능선과 같아 보여 시골길을 차로 달리다 보면 한국과 유사하다고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북부 해안 지역으로 가면 석회암 구조여서 더 신비롭게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하롱베이와 깟바 등 북부 지역의 모든 해안 지역에서 종유 동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논밭, 붉게 물드는 석양, 잔잔한 호수... 자연이 주는 평온함은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남부 호찌민시에서 한 시간 전후의 붕타우는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고, 껀져라는 곳은 맹그로브 숲으로 유명한 곳으로 원숭이들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롱베이의 웅장한 풍경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고, 다낭의 해변을 거닐며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때는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했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도 후에(Hue)에서 궁성을 바라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고, 전통 공연 속에서 그들이 누렸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시골 마을에서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보며 느꼈던 감동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V. 문화적 차이: 어려움 속에서 얻은 성장과 이해
물론, 베트남에서의 삶이 늘 매 순간마다 아름답기만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 언어 장벽, 낯선 생활 방식, 법적인 요건과 해석 등 어려움에 부딪힐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는 더욱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과 가까워져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에 살다 보면 베트남은 문화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음식의 철학이 음양오행에 자리하고 있고 유교 문화의 유산을 잘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여간에 베트남에서의 어려웠던 시간과 즐거웠던 시간 모두를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배웠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 간 거겠죠. 때로는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덕분에 다시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장 큰 힘의 원천은 종교적이었지만..
VI. 또 다른 고향, 베트남: 삶의 일부가 된 사랑
베트남에서의 시간들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소중한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맛있는 음식, 그리고 때로는 마주해야 했던 어려움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제 삶의 한 페이지를 풍성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이제 베트남은 제게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또 다른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베트남을, 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같은 한국 분들이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왠지 제가 거기에 포함된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곳이 베트남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