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사람이 손님석이 있는 자전거를 끄는 교통기관을 '인력거'라고 부릅니다. 일본에는 바퀴 달린 자전거가 아니라, 사람이 끌고 가는 '인력거'도 있습니다만, 동남아와 인도 지역을 포함해서 인력거라고 하면 대부분, 바퀴 달린 자전거의 형태로 라이더가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이런 인력거를 '릭샤'라고 부릅니다. 이런 '릭샤'는 손님의 자리가 뒤편에 있으며 앞에서 운전하는 라이더의 자리보다 약간 좁고 높은 위치여서, 사고에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타고 갈 때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가면 훨씬 안전해 보이는 인력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베트남의 인력거는 손님좌석이 앞 부분에 낮은 자리에 있고, 라이더는 뒤편의 약간 높은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라이더는 앞을 보면 운전할 수 있고, 좌석은 낮은 곳에 있어서 훨씬 안전하게 보이고, 타보면 안전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베트남의 인력거를 '씨클로(Cyclo)'라고 부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를 'Xich Lo'라고 부릅니다.
씨클로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깊은 문화적,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노동과 생존의 상징
씨클로는 베트남 노동계급의 인내와 생활력을 상징합니다. 지금은 그저 관광용으로만 사용되는 씨클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특별하게 경제적인 재원이 없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였으며, 힘든 육체노동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삶에 고통에 굴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과 생존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1.2 전통과 단순함과의 연결
씨클로는 도시가 더 느린 속도로 움직였던 더 단순한 근대 이전 시대의 유물입니다. 베트남, 특히 호치민시와 하노이와 같은 도시 중심지에서 씨클로는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씨클로는 거리의 리듬과 도시의 친밀감과 깊이 연결된 삶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1.3 취약성의 수단
씨클로는 전통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적었고 재정적인 지원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입원이자, 노동의 도구였습니다. 그야말로 사회적, 경제적 취약자들의 삶의 수단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상징적 의미에서 영화 '씨클로'는 1986년의 '도이모이' 정책 시행이후 경제가 꿈틀거리던 시절,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좀 더 나은 삶을 도모하던 그런 시절에 그들이 더 좋은 삶을 꿈꾸었던 도구였으나, 그곳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를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2. 영화 '씨클로'의 개요
- 감독: 트란 안 훙(Anh Hung Tran)/ 그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몇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본 영화와 함께 '그린 파파야 향기'와 '여름의 수직선에서' 등을 합하여 트란 안 훙 감독의 베트남 3부작으로 불립니다.
- 제작국: 프랑스(베트남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전적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되었습니다)
- 출연: 씨클로 소년 '레 반 록', 시인 '양조위', 누나 '트란 누 엔 케' 및 누 쿠인 뉴엔과 호앙 푸크 뉴엔등이 출연했다.
- 수상: 제22회 켄트 영화제, 제5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수상작
-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할만큼 상당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수작이지만, 베트남 정부는 이 영화의 내용이 베트남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을 불허했다고 합니다.
- 누나 역의 '트란 누 엔 케'는 트란 안 훙 감독의 부인입니다.
3. 줄거리
베트남 호치민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18세의 소년은 씨클로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씨클로를 몰다 사고로 죽은 아버지처럼, 씨클로를 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씨클로 보이(소년)'라고 부릅니다.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는 할아버지, 구두 닦는 여동생, 집안 살림을 하고 있는 누나까지 이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 삶 속에서 여전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년은 '마님'에게 돈을 빌려 씨클로를 사서 이를 운전하고 있었는 데, 어느 날 이 씨클로를 건달패들에게 빼앗깁니다. 절망에 빠진 소년이 마님에게 씨클로를 빼앗겼다고, 그래서 돈을 갚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했을 때, 마님은 자신의 갱조직에서 일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산 씨클로를 부하들을 통해서 빼앗고, 이 소년을 자신의 갱 조직에서 일하도록 한 모든 일들은 사실 마님이 기획한 일들이었습니다.
소년은 망설이며 이 일을 시작하지만, 약간의 눈속임이나, 거짓말로 손쉽게 돈을 버는 범죄의 세계에 빠져들어갑니다. 마님에게는 정부와 같은 한 남자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시인(The Poet)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인이 실질적인 갱단의 운영자로서 이 소년을 갱 조직에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소년의 누나를 사랑하게 되는데, 시인의 일 중 하나가 매춘을 알선하는 일이었는데, 사랑하는 소년의 누나를 그는 유사 매춘행위 같은 일에 사용하고자 합니다. 소년의 누나도 그 시인을 사랑했기에 그가 원하는 일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시인은 그런 자신을 질타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소년의 누나는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괴롭지만 사랑하는 자신을 그런 일로 내모는 시인을 오히려 감싸 안습니다.
소년은 마약을 운반하는 일까지 하게 되는데, 어느날 돼지고기에 마약을 숨기고 가다 경찰의 심문을 받게 되었으나, 다행스럽게 그때 발생한 폭동으로 말미암아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는 그날 밤, 아버지의 꿈을 꿉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선량함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년은 꿈에서 깨어 죄책감을 느끼고 갱단의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여, 마님을 찾아가 돈을 내놓으며 일을 그만하겠다고 하지만, 그에게 살인청부의 어려운 일이 맡겨집니다. 소년은 환각 상태에서 파란 페인트를 덮어쓰고 자실을 시도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어느 날, 소년의 누나는 매춘일을 하다가 정조를 잃게 됩니다. 시인은 매춘을 알선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더욱이 사랑하는 소년의 누나를 그런 일을 하도록 했지만, 그녀가 하는 일은 유사성행위 정도였어서, 정조를 잃지는 않았었는데, 이날 그런 일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소년의 누나를 클럽의 한 남자에게 인계하고 나올 때, OST로 Radiohead의 노래 Creep라는 노래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흘러나옵니다.
I am a Creep, I'm a weirdo.(나는 약삭 빠른 놈이야, 나는 이상한 놈이야)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나는 지금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I don't belong here.(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야)
She's running out again(그녀가 다시 떠나가고 있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날 순결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분노한 시인은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 그 남자를 찾아가 복수를 하고, 집에 불을 질르고 자살을 합니다.
소년은 마지막 마약 운반을 위해 씨클로의 핸들을 잡습니다.
4. 영화 '씨클로'를 통해 바라본 세상- '트랩(함정)'에 빠진 인생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들에게는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년이고, 마님이며, 누나요, 시인입니다. 마치 그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입니다. 소년은 우리 시대의 다른 상황 속에서 그와 같은 연령대의 '함정'에 빠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4.1 소년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소년의 아버지는 씨클로를 몰다가 트럭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하시지만,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며 근근이 살아갑니다. 여동생은 구두를 닦고 누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매춘을 합니다. 그의 경제적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에게 이런 상황적 함정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한 번의 찬스는 마님이 그에게 씨클로를 살 돈을 빌려주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 마님의 궤계로 말미암아 소년은 씨클로를 사기 위해 빌린 돈을 갚지도 못한 채 씨클로를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함정을 빠져나갈 찬스로 여겼던 그 일이 오히려 더 큰 절망을 가져옵니다. 이런 사건에 대한 마님의 대안은 소년으로 하여금 그녀의 갱단에 들어가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건이었으나 소년은 이를 계기로 범죄의 달콤함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범죄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갱단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너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일이 그의 인생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삶의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마님의 아들처럼, 환각 상태에서 페인트를 덮어쓰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그 후 돼지고기 속에 마약을 숨기다 경찰에 심문을 받았으나, 시민 폭동이라는 사건을 통해 간신히 걸리지 않고 살아난 그날 밤, 그는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봅니다. 비록,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선량함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를 보고, 그는 다시금 죄책감을 느끼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자 합니다. 마님을 찾아가 돈을 내놓으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빠진 인생의 함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습니다만, 다시금 그에게 살인청부의 일이 맡겨집니다.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일지라도 나가는 것은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었고, 이 소년이 빠져나가고 싶었던 삶의 함정의 속성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소년은 다시금 마약을 운반하는 씨클로의 운전대를 잡게 됩니다.
4.2 마님
그녀는 부유합니다. 그럼에도 더 큰 부를 사랑하여 갱단을 운영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거칠 것이 없는 삶입니다. 돈을 가졌고, 불법적이긴 해도 힘도 가졌습니다. 소년을 자신의 갱단으로 끌어들이려고 소년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악한 지혜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하나뿐인 아들이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 아들은 페인트를 덮어쓰고 노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빨간 페인트를 덮어쓰고 죽게 됩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녀의 '함정'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4.3 시인
시인은 마님의 정부와 같은 사람으로, 갱단에서 매춘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순수해 보이는 누나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의 순수함을 사랑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누나를 매춘에 끌어들입니다.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나로 하여금 유사성행위 만 하게 함으로 그는 자신과 타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누나가 일을 할 때마다 내적 갈등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OST로 나왔던 Radiohead의 노래 가사처럼, '자신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냐'라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럽에 누나를 어떤 남자에게 데려다 주고 돌아온 바로 그날 누나는 순결을 잃게 됩니다. 시인에게 순결한 누나는 자신의 쓰레기같은 인생의 등대와 같은 존재였는데, 그녀가 순결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분노하며, 자신이 누나의 순수함을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자책감으로 누나를 데려다 주었던 자신의 손님인 그 남자를 찾아가 복수한 후, 집에 불을 지고 분신자살을 함으로 그의 함정을 벗어나게 됩니다.
4.4 누나
누나는 이 힘겨운 집안의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동생인 소년이 갱단에 들어가고, 그의 보스인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삶의 함정을 벗어나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녀에게 매춘을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해방구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녀에게 매춘을 요구하면서 괴로워하는 시인을 오히려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육체는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혀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게, 짓밟힙니다.
너무나 힘들고 안타깝고,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더 큰일이 그녀 앞에서 벌어집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시인이 분신자살을 한 것입니다. 누나는 과연 그 인생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감독은 우리에게 던지는 것 같습니다.
5. 결론
이 영화의 처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이 영화의 국내 상영을 허락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Tran Anh Hung 감독은 분주한 거리, 빽빽한 군중, 쉼 없는 소음과 같은 도이머 이 정책 후 발전하는 베트남의 일상 속에서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소외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삶의 무게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표상하고 있다면, 시인은 감정적인 무게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표상한다고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씨클로는 시적인 아름다움이 충만하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소망의 이야기이며, 어두움 속에서도 가치 있는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모든 관객들에게 Tran Anh Hung 감독이 말하고 싶어 하는 소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잡고 싶어하는 그런 것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