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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성들의 시댁 의식: '시월드'를 넘어 '동맹'으로

by jasonkang 2026.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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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어머니와 베트남 며느리의 케미

 

베트남 여성들이 시댁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닮아 있으면서도, 베트남 특유의 모계적 전통과 강한 생활력이 결합해 독특한 양상을 띱니다.

한국 사회에서 '시월드'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시댁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이 커진 반면, 베트남 문화권에서는 시댁을 "일방적으로 인내해야 하는 수직적 관계"라기보다는 "생존과 양육을 위해 긴밀히 연대하는 현실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1. 유교적 효(孝)와 '가족 중심주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교 문화권에 속했던 국가로,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Hiếu)를 도덕의 최우선 가치로 여깁니다.

  • 일상적 예의와 호칭: 베트남어는 상대와의 위계와 친소 관계에 따라 칭호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시부모를 부를 때도 친부모와 똑같이 '보(Bố, 아버지)', '메(Mẹ, 어머니)'라 부르며, 말끝마다 존칭 어미인 '아(ạ)'를 붙여 극진한 예우를 갖춥니다.
  • 명절(뗏, Tết) 문화: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우리나라의 설날)에는 한국과 유사하게 온 가족이 모여 조상신에게 제사(Cúng)를 올립니다. 며느리가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가문 행사를 챙기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거부감보다는 가문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제사는 조상신을 섬기는 풍습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행사로, 평생 보지 않고 지내던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서로 부모 제단을 모시겠다고 할 정도로 때로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할 정도입니다. 

2. '모계적 전통'과 여성의 발언권

베트남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엄격한 유교식 가부장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무부 장관'을 넘어 '총리' 역할을 하는 강력한 여성의 힘을 마주하게 됩니다. 베트남에는 예로부터 "남편이 밭을 갈면 아내는 씨를 뿌리고, 남편이 쉬면 아내는 시장에 간다", 혹은 "장수가 아무리 용맹해도 집에 오면 아내의 말에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여성의 생활력과 발언권이 막강합니다. 오랜 외세 침략과 전쟁으로 남성들이 전장으로 떠났을 때, 가문을 지키고 경제를 지탱한 주체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계적 전통 때문에 베트남 며느리는 시댁 앞에서도 단순한 '약자'나 '피지배자'로 머물지 않습니다. 깍듯하게 어른을 대접하면서도 가정의 실권과 경제적 주도권은 결코 놓치지 않는 특유의 당당함을 보입니다.

[현지 실생활 예화] "지갑은 며느리가 쥡니다" — 호찌민 란(Lan) 씨 가족 이야기

호찌민 외곽에서 시부모, 남편과 함께 3대가 사는 20대 후반의 란(Lan) 씨는 시아버지 생신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가계의 중심에 섭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남편은 물론 개인택시를 모는 시아버지까지 그날 번 돈과 월 결산 내역을 조용히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시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차를 따르고, 란 씨는 가계부를 펼쳐 돈을 세며 이번 달 생활비와 시부모님의 용돈, 친정 부모님께 보낼 지원금, 그리고 손주 교육비를 착착 분배합니다.

"아버지, 이번 달에는 혈압약 바꾸셔야 하니까 병원비 넉넉히 넣어뒀어요. 어머니는 다음 주 계모임 회비 미리 챙겨두세요."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며느리가 시부모의 돈줄까지 쥐고 지시하는 것처럼 보여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시아버지는 연신 "우리 며느리가 야무져서 집안 곳간이 든든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여자가 돈을 쥐어야 집안에 돈이 모인다(Tay hòm chìa khóa - 열쇠를 쥔 손)"라며 며느리 편을 듭니다.

만약 남편이 밖에서 쓸데없이 돈을 쓰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란 씨는 시부모 앞에서도 조리 있게 남편의 잘못을 꼬집습니다. 이때 시부모는 아들을 감싸기보다 "아내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라며 며느리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처럼 베트남 문화에서 여성의 발언권은 억지로 쟁취한 권리가 아니라, '가장 억척스럽게 일하고 실질적으로 살림을 불려 나가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정당한 권력입니다.

따라서 베트남 며느리가 시댁과 맺는 관계는 수동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어른으로서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되, 살림과 경제의 결정권은 가장 유능한 내가 쥐고 집안을 번창시키겠다"는 당찬 실리주의가 베트남 여성들이 시댁 안에서 확고한 자기 위치를 점하는 진짜 비결입니다.

3. 실용적인 '육아·가사 동맹'

베트남은 맞벌이 비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출산 후 빠르게 직장이나 일터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시부모(특히 시어머니)는 아이를 돌봐주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됩니다. 실제로 큰 아파트 단지에서 저녁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뛰어 노는데 이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할머니들입니다. 

  • 시댁과의 합가(合家)나 잦은 왕래를 '간섭과 구속'으로 보기보다는, '맞벌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현실적 복지망'으로 여깁니다.
  • 따라서 며느리 입장에서도 시부모를 공경하고 잘 모시는 것이 가정을 원활하게 굴러가게 만드는 상호 호혜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현지 문화 예화] 시장에서 죽을 파는 흐엉(Hương) 씨 이야기

하노이 전통시장에서 쌀죽(Cháo) 장사를 하는 30대 여성 흐엉 씨는 시부모님과 한 건물 위아래 층에 삽니다. 흐엉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사 준비를 하고, 아침 7시가 되면 시어머니가 흐엉 씨의 다섯 살 난 아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데려다줍니다.

흐엉 씨는 매일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시어머니 방으로 가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건네며 "어머니, 오늘 장사는 어떠셨어요? 아이 돌봐주셔서 감사해요(Mẹ ơi, con cảm ơn mẹ ạ)"라고 싹싹하게 인사를 건넵니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와 집안일은 흐엉 씨가 도맡아 하지만, 표정에 불만이 없습니다.

이웃이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게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흐엉 씨는 이렇게 답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시장에 나가 돈을 벌겠어요? 어머니가 잔소리하실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 가족과 손주를 위한 거잖아요. 제가 조금 더 움직이고 공경해 드리면 집안도 편안하고 장사도 잘 돼요."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차이점

베트남 여성이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인 시댁과 관계를 맺을 때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간극도 존재합니다.

  1. 친화력과 싹싹함: 베트남 여성들은 시부모를 '모셔야 할 어른'으로 대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애교 있게 다가가거나 정성껏 모시려는 태도를 자주 보입니다. 이는 한국 시부모들에게 큰 만족감을 줍니다.
  2. 처가(베트남 본가)에 대한 의무감: 베트남 여성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친정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매우 강합니다. "시댁에 잘하는 만큼, 내 친정 부모님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해드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여, 이를 한국 시댁이 이해하지 못할 경우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3. 독립된 주체로서의 인정 욕구: 집안에 갇혀 가사만 전담하기보다는 바깥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생활력이 강합니다. 시댁이 며느리를 보호의 대상이나 순종적인 며느리로만 가두려 할 때 문화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4. 결론

결국 베트남 여성의 시댁관은 전통적 '유교적 효(孝)'와 실용적인 '가족 공동체 의식'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들은 시댁을 일방적 희생이나 회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짐과 육아를 나누는 현실적인 연대 파트너로 인식합니다. 어른을 싹싹하게 공경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해 가정의 주체로 당당히 자리 잡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한·베 국제결혼에서 고부갈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상호 문화에 대한 현실적 존중이 필수적입니다. 베트남 며느리의 헌신과 친화력을 과거 한국식의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이들이 중시하는 사회·경제적 활동 욕구와 베트남 친정에 대한 효도 책임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시댁이 며느리의 자립심과 본가에 대한 애정을 열린 마음으로 지지할 때, 베트남 여성 특유의 가족애와 끈끈한 결속력은 새로운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힘으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시댁이란 피하고 싶은 짐이 아니라, 존중을 표하고 실리적 연대를 맺는 대가족의 핵심 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관계가 지속되려면 며느리의 효심을 당연시하기보다, 그들이 가진 본가에 대한 책임감과 경제적 주체성을 시댁이 함께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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