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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김우민: 응우옌 후이 호앙(Nguyễn Huy Hoàng) 아시안 게임 수영 800미터 동메달

by jasonkang 2026.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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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자잉강에서 수영하는 어린 소년들

 

최근 아시안 게임의 수영을 보면서 한국 수영의 비약적인 발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수영을 보며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섰던 베트남의 한 선수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수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강물에서 아시아 시상대까지: 가난한 어부의 아들 응우옌 후이 호앙이 쓴 인간 승리의 드라마

스포츠는 종종 수치와 기록의 언어로 표현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땀과 눈물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수영이라는 종목은 첨단 스포츠 과학, 값비싼 장비, 유소년기부터 이어지는 체계적인 인프라가 승패를 크게 좌우하는 무대입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 속에서, 오직 거친 강물의 기억과 가족을 향한 지극한 사랑만으로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오른 한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 수영 국가대표 응우옌 후이 호앙(Nguyễn Huy Hoàng) 선수입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자유형 800m 결승전에서 마지막 50m를 남겨두고 폭발적인 스퍼트를 올리며 동메달을 확정 짓던 그의 레이스를 지켜보며 느꼈던 전율과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강호들의 틈바구니에서 그가 일궈낸 동메달은 단순한 3위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겪어낸 지독한 가난과 절망을 이겨낸 숭고한 결실이었습니다. 직접 취재하듯 그의 발자취와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기록해 봅니다.

1. 자잉강(Sông Gianh)의 흙탕물이 첫 수영장이었던 소년

응우옌 후이 호앙 선수의 고향은 베트남 중부 꽝빈성(Quảng Bình) 뚜옌호아현의 한적한 강변 마을입니다. 이곳은 베트남에서도 태풍과 홍수가 잦고 토양이 척박해 주민들의 삶이 몹시 고단한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호앙 선수는 가난한 어부 부부의 슬하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아버지가 강물 위에 띄우는 낡은 목선 한 척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매일 새벽 자잉강으로 나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거나 작은 양식장을 돌보며 겨우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집안 사정상, 물안경이나 수영복 같은 기본 장비는커녕 수영장 레인이라는 공간 자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호앙 선수가 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취미나 재능 발견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예닐곱 살 무렵부터 거센 물살이 치는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그물에 엉킨 부유물을 걷어내고, 양식장 그물을 수리하며, 물속에서 오랜 시간 숨을 참는 것이 어린 소년의 일상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흙탕물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호앙 소년을 보며 ‘자인강의 작은 수달(Rái cá sông Gianh)’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거친 강물의 저항과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 시간들이 훗날 아시아를 호령할 경이로운 심폐 지구력과 유연성의 모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2. 11세에 떠난 타향살이와 홀로 삼킨 눈물

초등학교 5학년(만 11세)이 되던 해, 지역 청소년 체육대회에 출전했던 호앙 선수는 현지 체육 지도자의 눈에 띄며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지도자는 소년이 정식 영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물을 타는 감각과 근성이 남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그렇게 호앙 선수는 꽝빈성 체육학교에 선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최고의 유망주들이 모이는 남부 껀터(Cần Thơ)의 국가스포츠훈련센터로 파견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년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훈련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체계적인 회복 프로그램이나 영양 식단은 부족했고, 매일 새벽부터 시작해 하루에만 15km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야 하는 장거리 수영 훈련은 어린아이의 체력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였습니다. 근육통과 피로가 온몸을 짓누를 때마다 집과 부모님이 간절히 그리웠지만, 그는 울음을 터뜨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호앙 선수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고향에 전화를 걸면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과 아버지의 빚 걱정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내가 여기서 흔들리면 가족의 가난을 끝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고 싶을 때마다 수영장 바닥 깊은 곳으로 잠수했습니다. 물속에서는 내가 우는지, 땀을 흘리는지 아무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국가대표 훈련생에게 지급되는 얼마 되지 않는 훈련 수당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음료수 한 병, 간식 하나 사 먹는 돈까지 아껴 모은 돈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송금했습니다. 그 돈은 부모님의 지병을 치료하는 약값이 되었고, 집안의 오랜 빚을 갚는 소중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소년에게 물살을 가르는 일은 곧 가족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패였습니다.

3. 열악함을 이겨낸 독기와 기술적 도약

수영 중장거리 종목(자유형 400m, 800m, 1500m)은 흔히 ‘물속의 마라톤’이라 불립니다. 고도의 지구력뿐만 아니라 구간별 페이스 분배, 일정한 스트로크 횟수 유지, 그리고 젖산이 온몸에 쌓여 타들어 가는 고통을 참아내는 정신력이 필수적입니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수영 강국들은 첨단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수중 카메라 동작 분석, 고압 산소 치료기 등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장거리 선수를 육성합니다. 반면 베트남의 훈련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했습니다. 호앙 선수는 이러한 장비와 데이터의 공백을 오로지 ‘성실함’과 ‘반복 훈련’이라는 원초적인 힘으로 메웠습니다.

그의 영법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효율적입니다. 거친 강물에서 체득한 덕분에 상체의 롤링이 부드럽고, 다리의 킥 동작을 과도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상체의 스트로크로 큰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고유의 리듬을 완성했습니다. 훈련 파트너나 코치진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는 단 한 번의 세션도 요령을 피우지 않았으며, 폐가 찢어질 듯한 인터벌 훈련에서도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4. 아시아를 뒤흔든 기적의 레이스: 항저우의 환희

응우옌 후이 호앙 선수가 아시아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었습니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출전한 그는 자유형 800m에서 동메달, 자유형 1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베트남 수영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남자 개인종목 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5년 뒤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각국의 견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호앙 선수는 다시 한번 시상대에 도전했습니다.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습니다. 초반부터 한국과 중국의 쟁쟁한 선수들이 빠른 페이스로 치고 나갔습니다. 호앙 선수는 무리하게 초반 승부를 걸지 않고 4~5위권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랩타임을 침착하게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승부처였던 700m 반환점을 돌자마자, 마치 자잉강의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어린 시절의 투혼을 되살리듯 엄청난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7분 51초 44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값진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시상대에 오른 것에 그치지 않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올림픽 기준기록(Olympic Qualifying Time, A컷)을 동시에 충족하며 세계 최고 무대인 파리 올림픽 본선 티켓을 자력으로 거머쥐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투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 종목이 아닌 자유형 400m 결승에서도 3분 49초 16으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또 하나의 동메달을 추가, 대회 2관왕(동메달 2개)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5.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그리고 시상대의 눈물

경기가 끝나고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과 '3'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한 순간, 호앙 선수는 한동안 물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리고 수영 모자를 벗어 던지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목에 걸린 동메달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그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첨단 수영장 대신 흙탕물이 흐르던 강물에서 시작해, 낡은 가방 하나를 메고 눈물을 삼켰던 11세 소년이 드디어 아시아 수영 강국들의 에이스들과 나란히 서서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메달은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커다란 자긍심이자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열악한 환경도 꺾을 수 없는 불굴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6. 기록을 넘어 희망의 상징이 된 ‘자잉강의 수달’

오늘날 응우옌 후이 호앙 선수의 이야기는 베트남의 교과서와 청소년들에게 가장 감동적인 롤모델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메달을 따고 유명해진 뒤에도 여전히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으며, 훈련이 없는 휴식기에는 언제나 고향 꽝빈성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작은 일손을 돕곤 합니다.

우리는 스포츠를 보며 종종 '기적'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응우옌 후이 호앙 선수가 보여준 레이스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매일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억척스러운 인내, 가족을 향한 지극한 효심, 그리고 물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담대한 용기가 빚어낸 필연적인 승리였습니다.

흙탕물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가난과 역경을 헤치고 아시아의 영웅으로 우뚝 선 응우옌 후이 호앙 선수의 레이스는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에게 "출발선이 뒤처져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가장 따뜻하고 강렬한 용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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